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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유씨(貞州柳氏)
유래
  •  시조 : 유소(柳韶)
    시조 양의공(襄毅公) 유소(柳韶)는 고려시대에 태위문하시랑평장사(太尉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뒤에 덕종실(德宗室)에 배향(配享)되었다고 한다. 문헌이 없어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 없다.
인물
유소(柳韶)의 아들 유홍(柳洪)이 숙종비 명의왕후(明懿王后)의 아버지로 무과에 급제하여 사도(司徒)를 지냈는데 뒤에 선종실(室)에 배향되었다. 또한 유홍(柳洪)의 아들 정간공(貞簡公) 유인저(柳仁著)는 사공(司空)을 역임하고 예종실(睿宗室)에 배향되었다. 직장(直長) 유빙(柳憑), 시종(侍從) 유덕영(柳德英)을 일파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주요 인물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개풍
정주(貞州)는 황해도 개풍군(開豊郡)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때에는 정주(貞州)라 불렀다. 1018년(고려 현종 9) 정주가 개성현에 속하게되었으나 1108년(예종 3) 승천부(昇天府)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 해풍군(海豊郡)으로 강등되었다. 1398년(태조 7)에 덕수현이 병합되었고, 1413년(태종 13) 다시 개성부에 합속되었다가, 1418년에 환원되었다. 1442년(세종 24) 덕수현(德水縣)과 합하여 풍덕군(豊德郡)으로 개편되었고, 1649년(효종 1)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었다. 1823년(순조 23) 개성에 병합되었다가, 1866년(고종 3)에 다시 복구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풍덕군은 폐지되어 개성군에 통합되었다. 1930년 개성군 송도면이 개성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개성과 풍덕이 합쳐서 개풍군으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정주유씨는
1985년에는 총 29가구 129명,
2000년에는 총 217가구 67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