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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유씨(全州柳氏)
유래
  • 전주유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3파가 있다. 유혼(柳渾), 유습(柳濕), 유지(柳池)를 각각 파조(派祖)로 삼아 충숙공파(忠肅公派), 장령공파(掌令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로 나누어지며 파에 따라 시조를 달리한다.

    만성보(萬姓譜) 등에는 완산백(完山伯)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유혼(柳渾), 유지(柳池)를 시조로 하는 파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시조 유습(柳濕)은 고려(高麗)말에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에 추증(追贈)되고 완산백(完山伯)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완산(전주)을 생활근거지로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완주(전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상계(上系)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물로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영경(柳永慶)을 비롯하여 이조참판 유의손(柳義孫), 관찰사 유숭조(柳崇祖), 대사헌 유경창(柳慶昌)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유경(柳炅, 1626 丙寅生) : 문과(文科) 효종6년(1655)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유담(柳潭, 1560 庚申生) : 문과(文科) 선조27년(1594)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유영길(柳永吉, 1538 戊戌生) : 문과(文科) 명종14년(1559)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유경립(柳經立, 1622 壬戌生) : 문과(文科) 효종5년(1654)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유복명(柳復明, 1685 乙丑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유격(柳格, 1633 癸酉生) : 문과(文科) 숙종20년(1694) 별시 병과(丙科)
 유색(柳穡, 1561 辛酉生) : 문과(文科) 선조28년(1595) 별시 병과(丙科)
 유도옥(柳道玉, 1652 壬辰生) : 문과(文科) 숙종12년(1686) 별시 을과(乙科)
 유효담(柳孝潭) : 문과(文科) 세종23년(1441) 식년시 정과(丁科)
 유의손(柳義孫) : 문과(文科) 세종18년(1436) 중시 을과(乙科)
등 모두 36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00명, 무과 17명, 생원진사시 247명, 의과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31世
      (人변)
      식(植)
      32世
      영(泳)
      희(希)

      33世
      식(植)
      수(秀)
      경(璟)
      34世
      희(熙)
      희(熙)
      종(鍾)
      35世
      규(奎)
      기(基)
      수(洙)
      36世
      종(鍾)
      석(錫)
      병(柄)
      37世
      태(泰)
      한(漢)
      희(熹)
      38世
      목(木)
      상(相)
      효(孝)
      39世
      열(烈)
      영(榮)
      호(鎬)
      40世
      재(在)
      재(載)
      영(永)
      41世
      용(鎔)
      종(鍾)
      동(東)
      42世
      승(承)
      순(淳)
      형(炯)
      43世
      표(杓)
      병(秉)
      채(埰)
      44世
      형(炯)
      섭(燮)
      현(鉉)
      45世
      기(基)
      원(遠)
      46世
      -
      47世
      -
      48世
      -
      49世
      -
      50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2世孫은 31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유씨는
    1985년에는 총 11,365가구 47,383명,
    2000년에는 총 19,008가구 61,6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