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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양씨(南原梁氏)
유래
  •  시조 : 양을나(良乙那)
    양을라와 양탕의 후손이며 중시조인 양우량이 757년(신라 경덕왕) 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해지고 남원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양응락(梁應洛, 1572 壬申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곡(梁穀) : 문과(文科) 광해군6년(1614)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정호(梁廷虎, 1683 癸亥生) : 문과(文科) 숙종38년(1712)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권(梁權) : 문과(文科) 태종1년(1401) 증광시 동진사(同進士)
 양성시(梁聖時, 1673 癸丑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별시2 을과(乙科)
 양봉기(梁鳳騎, 1869 己巳生) : 문과(文科) 고종27년(1890) 별시 을과(乙科)
 양순석(梁順石)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식년시 정과(丁科)
 양사적(梁思○) : 문과(文科) 태종2년(1402)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양희(梁喜, 1515 乙亥生)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식년시 을과(乙科)
 양취영(梁就盈) : 문과(文科) 중종6년(1511)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1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45명, 무과 60명, 생원진사시 102명, 의과 1명, 음양과 8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라북도 남원시 일원의 지명으로 16년(백제 온조왕 34) 무렵에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백제의 5방 중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에 9주 5소경의 하나로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5현을 관할하는 남원부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부사(知府事)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帶方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360년(공민왕 9)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는 남원진영을 두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전라좌영을 설치하였다. 1740년(영조 16) 일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라 4부 중 하나인 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년 남원 48방을 22개면으로 통폐합하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남원시와 남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남원군이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원양씨는
    1985년에는 총 52,265가구 220,002명,
    2000년에는 총 67,691가구 218,54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