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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양씨(羅州梁氏)
유래
  • 나주양씨(羅州梁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양인(梁○)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별시 병과(丙科)
 양득겸(梁得謙,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양호걸(梁好乞,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양의추(梁義秋,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양포(梁浦, 1532 壬辰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양국(梁國, 1602 壬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양득경(梁得京, 1600 庚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양억주(梁億柱)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5년(1510) 식년시 삼등(三等)
 양효선(梁孝善) : 역과(譯科) 인조11년(1633) 식년시 ()
 양홍우(梁弘宇) : 역과(譯科) 현종10년(1669) 식년시 ()
등 모두 1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1명, 역과 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양씨는
    1985년에는 총 49가구 240명,
    2000년에는 총 514가구 1,67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