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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선씨(寶城宣氏)
유래
  •  시조 : 선윤지(宣允祉)
    시조 선윤지는 중국 노나라 대부 선백의 후손이며 명나라 때 문연각 학사로서 1382년(고려 우왕 8년)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귀화하여 전라도 안염사가 되어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후에 조선을 개국하자 절의를 지키고 보성에 은거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보성을 본관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선세휘(宣世徽, 1582 壬午生) : 문과(文科) 광해군13년(1621)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선준채(宣俊采, 1824 甲申生) : 문과(文科) 고종12년(1875) 별시 병과(丙科)
 선문주(宣聞周, 1790 庚戌生) : 문과(文科) 헌종13년(1847) 별시 병과(丙科)
 선헌(宣憲) : 문과(文科) 중종26년(1531) 식년시 병과(丙科)
 선진규(宣鎭奎, 1850 庚戌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별시3 병과(丙科)
 선약봉(宣若奉, 1596 丙申生) : 문과(文科) 현종6년(1665) 정시2 병과(丙科)
 선순보(宣淳輔) : 문과(文科) 세조5년(1459) 식년시 병과(丙科)
 선필영(宣必英, 1644 甲申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선기주(宣起周)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선시진(宣時振, 1667 丁未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7명, 무과 14명, 생원진사시 14명, 음양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21世
      규(圭)
      석(錫)
      호(鎬)
      영(泳)
      22世
      종(鍾)
      태(泰)
      영(永)
      상(相)
      23世
      호(浩)
      래(來)
      주(柱)
      병(炳)
      24世
      동(東)
      용(容)
      병(炳)
      수(壽)
      25世
      무(戊)
      무(茂)
      성(成)
      26世
      기(己)
      기(起)
      희(熙)
      27世
      경(庚)
      경(慶)
      강(康)
      28世
      행(幸)
      재(宰)
      신(新)
      29世
      임(壬)
      성(性)
      중(重)
      30世
      계(癸)
      천(天)
      발(發)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世孫은 21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보성
    보성(寶城)은 전라남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보성군(寶城郡) 지역의 옛 지명으로 마한 54국 중 불운국(不雲國)이었다고 한다. 백제 때에는 복홀군(伏忽郡)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고려 태조는 삼양군(三陽郡)이라 하였으며, 996년(성종 15)에 패주(貝州)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보성군(寶城郡)이 되었다. 1441년(세종 23)에 조양현(兆陽縣)과 복성현(福城縣)을 제외한 대부분의 속현이 흥양현으로 이속되어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보성군, 1896년에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권역이 다시 확대되었고 1941년에 보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보성선씨는
    1985년에는 총 7,651가구 33,105명,
    2000년에는 총 10,821가구 34,84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